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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 creative exploratio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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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 버니는 잔디를 만질 수 있을까? — 시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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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rdinates in Transit
스탠퍼드 버니는 잔디를 만질 수 있을까? — 시도 1: 잔디 씨앗 배치도 [펼쳐진 300/600/1200 폴리곤 스탠퍼드 버니]
Attempt to make Stanford Bunny Touch Grass 1: Grass Seed Placement [Unrolled 300/600/1200-Polygon Stanford Bunny]
“스탠퍼드 버니는 잔디를 만질 수 있을까?”
이 작업은 컴퓨터 그래픽 모델 스탠퍼드 버니(Stanford Bunny)와 온라인 과몰입 상태에 대한 반응으로 등장한 인터넷 밈(meme) ‘터치 그래스(Touch Grass)‘의 교차점에 대한 탐구로 출발한다.
스탠퍼드 버니는 1994년 레이저 스캔을 통해 디지털화된 뒤, 컴퓨터 그래픽 연구의 대표적 테스트 모델이자 표준 데이터셋으로 사용되어 왔다. 원본 조각품의 물성은 폴리곤과 좌표계로 구성된 데이터로 대체되었다.
나는 약 6만 9천여 개의 폴리곤으로 이루어진 이 3D 모델을 구조적 가독성이 높은 로우폴리곤(low-polygon) 형태로 변환하고, 각 모델을 평면화(unrolling)하여 2D 도면으로 전개했다. 평면화된 좌표는 버니 형상을 구성하는 모든 점(vertices)의 위치를 드러내며, 나는 이를 잔디 씨앗을 배치할 수 있는 다이어그램(seed placement diagram)으로 해석했다. 각 점에 삽입된 씨앗 형상의 그래픽은 데이터 포인트를 ‘씨앗이 자라날 수 있는 가능성의 장소’로 전환시킨다.
그래픽은 모눈종이(grid paper) 위에 인쇄되었다. 그리드는 디지털 데이터를 구성하는 좌표 환경을 상징하며, 디지털 형상이 물리적 환경과 접촉하는 가상의 지형으로 작동한다. 여기서 잔디는 씨앗, 즉 잠재태(potentiality)로서 존재한다. 디지털 모델 스탠퍼드 버니가 물리적 잔디를 만지는 행위는 아직 완료되지 않은 사건이며, 그것이 가능해질 수 있는 구조적 기반이 생성된 셈이다.
Note
- 물성을 잃고 디지털로 변환된 데이터는 물리적 환경과 다시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는가?
- 디지털 존재의 점(vertex) 위치는 물리적 씨앗의 잠재적 위치로 변환될 수 있는가?
- 접촉(touch)은 실제 발생해야만 의미를 갖는가, 아니면 가능성의 구조만으로도 작동할 수 있는가?
〈스탠퍼드 버니는 잔디를 만질 수 있을까? — 시도 1〉은 ‘터치 그래스’라는 명령에 대하여 잠재적 접촉 구조를 생성하는 개념적 설계도(conceptual blueprint)이며, 그 가능성을 열어두는 시도이다.
스탠퍼드 버니는 잔디를 만질 수 있을까? — 시도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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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ordinates in Transit
스탠퍼드 버니는 잔디를 만질 수 있을까? — 시도 2: 지표와 퇴적
Attempt to make Stanford Bunny Touch Grass 2: Index to Sediment
〈스탠퍼드 버니는 잔디를 만질 수 있을까? — 시도 2〉는 정전적 모델(canonical model)로 자리한 디지털 존재의 역사를 전제로 하며, 이것이 다시 물질화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손실과 균열을 시각화한다.
이 작업에는 두 가지 핵심 축이 있다.
- 디지털적 객체(digital object)로서의 버니의 역사성
이 작업의 출발점은 컴퓨터 그래픽의 역사에서 하나의 표준으로 자리잡은 스탠퍼드 버니(Stanford Bunny)다. 본래 정원 장식용 테라코타 조각품이었던 이 토끼는 1990년대 초, 스탠퍼드 대학교의 한 연구실에서 레이저 스캐닝을 거쳐 3D 파일로 디지털화되었다. 이는 초기 컴퓨터 그래픽의 역사에서 복잡한 형상의 물체를 하나의 고해상도 디지털 메시(mesh)로 확립해 낸 상징적 사건이었으며, 이후 스탠퍼드 버니는 공인된 데이터셋으로 널리 사용된다.
토끼는 원본의 물질적 맥락과 스캔 직후의 지표성(indexicality)에서 벗어나 알고리즘적 연산 체계에 흡수되었다. 이 작업은 그 잃어버린 맥락을 다시 호출하며, 디지털로 변환되며 사라졌던 질감, 취약성, 제작의 역사와 우연성을 다시금 드러낸다. - ‘Touch Grass’라는 문화적 명령
인터넷 밈(meme)인 ‘터치 그래스(Touch Grass)‘는 온라인 과몰입 상태에서 벗어나 물리적 현실과 다시 접촉하라는 일종의 명령문으로 기능한다. 이 작업은 스탠퍼드 버니를 그 주체(subject)로 설정하여 ‘터치 그래스’의 명령을 문자 그대로 수행함과 동시에 그것의 실현 가능성에 질문을 남긴다.
caption
나는 스탠퍼드 버니를 3D 프린트한 뒤, 후가공을 거쳐 석고 몰드를 제작했다. 그 후 몰드에 흙물을 주입하고 탈형하는 슬립 캐스팅(ceramic slip-cast) 기법을 통해 형상을 복제하였으며, 이렇게 성형된 토끼들을 잔디 위에 설치했다. 조형물은 서서히 건조되고 취약해져 이후 내린 빗속에서 붕괴되었다.
스탠퍼드 버니는 물리적 세계에 닿는 제스처를 수행하지만, 그 ‘닿음(touch)’은 매개된 접촉이며 지연된 퍼포먼스다. 물질적 과정—습도, 압력 등에 의한 침식—에 의해 형상은 궁극적으로 해체되며, 흩어진 입자들은 점진적으로 땅에 스며든다. 초기의 제스처는 형태의 제약을 넘어 연장되고 확장될 수 있을까?
이것은 물질과 디지털 데이터 사이, 그리고 다시 물질에 이르는 제작의 연속에서 발생하는 손실과 전환의 비용을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하나의 실험이다. 디지털 세계에서 표준적 모델로서 존재하던 토끼가 다시 물질이 될 때, 데이터의 정밀함은 흙의 취약함으로 전환되고, 형상의 안정성은 환경적 우연성에 노출된다.
이 설치 작업은 역번역의 실험이다. 물질 세계를 스캔하여 디지털화하는 대신, 디지털 데이터가 다시 가변적이고 퇴화가능한 물질로 존재하는 과정이다. 이것은 물질과 디지털이 서로를 순환적으로 구성하는 생태적 관계를 드러낸다.
흙 → 조각품 → 디지털화 → 유통 → 재물질화 → 풍화와 침식 → 다시 흙으로의 퇴적
Note
- 시간은 이 역번역의 과정 속에 어떻게 축적되는가?
1994년의 3D 스캔, 2025년의 재물질화. 과거의 지표(指標, index)는 현재의 물리적 제스처와 교차하며, 붕괴와 스며듦은 미래적 연속성을 만들어낸다. 사건들은 단선적 흐름을 벗어나 과거-현재-미래가 겹치고 지연되며 서로 참조하는 구조를 형성한다.
요컨대, 나는 이 작업으로 하여금 정원의 땅에서 출발한 토끼가 좌표계를 경유하여 다시 지표면(地表面)에 닿을 수 있는가를 묻는다. 이 질문은 단순한 물리적 접촉의 문제를 넘어 데이터와 재료, 기술과 우연성, 시공간의 층위가 서로 교차하며 생성하는 복합적인 사건으로 제시된다.
Branching over Panoramic Str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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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ching over Panoramic Strata
〈Branching over Panoramic Strata〉는 지질학적 시간의 단절을 나타내는 ‘부정합(不整合)’을 모티프로 한다. 인간의 관습적 시간 인식이 선형의 질서를 따르는 데 반해, 동시대의 기술 환경은 시간을 무작위로 호출하고 단절시키며 뒤섞는 비선형의 지대를 형성한다.
화면의 하단을 지지하는 지층의 부정합은 변형과 단절, 재축적을 시각화한다. 토끼는 이 뒤틀린 시간의 층위를 넘나들고 있다. 도약, 착지, 체공의 순간이 무작위로 배치된 이 장면에서 인과의 질서는 해체된다.
상단의 배경에 흩뿌려진 문자열은 반복적으로 ‘지금’을 렌더링하는 디지털 텍스트의 재현이다. 온라인을 유영하며 마모(digital weathering)되는 이미지 ・ 영상 ・ 소리와는 달리 텍스트는 시간의 경과를 직접 내보이지 않는다.
부정합의 지반 위로 뼈대(wireframe)를 드러낸 나무가 자리한다. 3D 좌표 공간에서 태어난 이 비물질 존재는 허공에서 조우하여 줄기가 되거나, 분기점을 달리한 채 접합된 몸이다. 나무는 자연의 선형적 생장 규칙을 따르지 않는다.
뼈대의 선은 디지털로 생성한 그래픽을 좌우 반전하여 종이에 인쇄한 뒤 캔버스에 안착시키는 전사 과정을 거쳤다. 수분과 압력에 의해 소실된 선과 잘게 구겨진 표면은 비물질적 데이터가 물질적 캔버스로 이행하며 남긴 마찰의 흔적이자 매개의 증거이다.
‘가상’이라 불리는 디지털 존재는 선명하게 ‘현실(hyperreality)’의 위상을 차지하고, 뒤섞인 시간의 지층에 뿌리를 향한 듯 불안정한 자세를 내보인다.
Branching over Multi-angle Str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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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anching over Multi-angle Strip
〈Branching over Multi-angle Strip〉은 끊임없이 편집되고 되감기며 건너뛰어지는 오늘날 미디어 환경의 시간을 시각화한 작업이다.
횡렬로 펼쳐진 다각도 인물 초상은 컴퓨터 소프트웨어의 멀티뷰 인터페이스(multi-view interface)와 닮아 있다. 기록된 과거와 실시간으로 수집되는 미래가 동시적으로 교차하며 현재를 구성한다.
화면을 횡단하는 검은색 띠 위로 미디어 제어의 언어들이 중첩된다. 이 언어들은 시점의 혼재를 부추긴다. 시간이 선형의 인식 구조를 이탈하려 한다.
인물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시선은 캔버스 상단의 넓은 영역을 차지하는 문자열로 기록되었다. 이미지 데이터와 달리 낡지 않는 명징한 정보값으로 존재하는 텍스트 데이터로 이루어진 초상이다.
문자열의 레이어 위로 지오메트리(geometry)로 구성된 3D 형상이 위치한다. 허공에서 시작된 이 줄기 식물은 구태여 뿌리내릴 유명무실의 땅을 호출한다. 호출된 지면의 검은색은 상하로 펼쳐지는 흰색의 화면과 대비를 이룬다. 이는 RGB값의 부재 (0, 0, 0), 즉 통제된 공백이다.
이 디지털 개체는 맵핑(mapping)이라는 환각의 껍질을 거두어내고 뼈대(wireframe)를 드러냈다. 그 투박한 외양과 가지와의 연결점을 잃고 부유하는 잎의 덩어리는 선후행의 생장 구조를 전제하지 않는다.
이미지는 캔버스의 표면에 전사되며 물리적 조건에 의해 점과 선을 탈락시키거나 표면을 잘게 구긴다. 흑연이라는 아날로그적 수행으로 기록된 텍스트는 디지털 텍스트의 현재성과 대조적 관계를 이룬다. 비물질 데이터의 실재성은 물리적 표면으로 이행하며 노이즈(noise)를 발생시킨다.
상하의 구분, 나열된 초상, 자연의 인과율을 흉내 낸 디지털 껍데기가 옮겨간 화면을 바라보며 ‘위’와 ‘아래’, ‘앞’과 ‘뒤’의 질서를 읽어내려는 나의 시도는 뉴미디어가 형성하는 현대적 시간과 충돌한다.